요즘 서태지 팬이 된 이래 최악의 황당함을 느끼고 있다.
문제는 서태지가 아니고 서태지 팬들 때문이다.
예전부터 죽 태지매니아 게시판만 보다가 얼마전에 가입한 서태지닷컴에 올라온 글들을 보니 서태지가 변했다느니.. 서태지가 빅팀이 금지곡으로 된 것에 대한 논지를 잘못 짚었다느니..
난 처음에 안티가 내분 일으키려고 단체로 쇼하는 줄 알았다.
물론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우선 공연 얘기부터 해보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번 공연을 못가고 게시판에 쓰여진 글만 읽어서 잘은 모르지만 사운드 엉망이었다는 건 피어팩토리가 걷어차서 그렇다는 썰이 있으나 그 부분은 확인되지 않아서 언급하지 않겠다.
날 가장 어처구니 없게 만들었던 건 서태지가 빅팀에 관한 언급을 하고나서의 팬들 반응이었다.
서태지가 여성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고 빅팀이 금지곡이 된 것 같다고,
그래서 우리 모두 싸우자는..
그 말을 듣고 어떤 한 팬이 그 순간 민망해서 혼났다는 글을 봤다.
정말 황당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팬들에게 그 어떤 요구나 부탁도 하지않은 서태지다.
언론이나 그 어떤 매체에서의 칼부림이나 총탄도 팬들을 뒤에 두고 자기 혼자 앞에 서 온몸으로 받아낸 건 서태지였다.
그런 그가 92 년 데뷔 이래 처음으로 팬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와달라고..
3 년 동안 집과 연습실만 오가며 혼을 담아 만든 음 하나 멜로디 하나 몇백번씩 생각하며 고쳐 만든 내 노래 살려달라고..
그런데 어떻게 거기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민망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단 말인가..
만약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그런 태지의 모습에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민망이라니..
6 집때 방송국에서 필요하면 쓰고 필요없으면 제 노래 안틀면 되죠.
라고 말했던 그 당당한 태지 어디갔냐고?
그건 당당한 게 아니었다.
그냥 무식한 그들을 태지가 무시했을 뿐이지..
그런 그가 이젠 힘겹게 만든 내 노래를 그 누가 통제하냐며 자기 노래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초라해 보이나?
한번도 그런 적이 없어서?
항상 팬들에게 감사하며 팬 이상의 기대는 하지않았던 서태지였다.
그런 코 흘리게 어린 팬들이 생각지도 않게 시대유감을 살려냈다.
0909 컴백 방송 때 테이크 원 전에 가장 먼저 나왔던 노래가 시대유감이었다.
서태지가 태지의 화 콘서트에서 그 어떤 노래보다 신나게 불렀던 노래가 바로 시대유감이었다.
그리고 팬들조차 가장 미칠 수 있었던 노래가 역시 시대유감이었다.
그건 서태지만의 노래가 아닌 태지와 우리가 완성시킨 합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서태지가 팬을 무대 위로 올려서 의아했나?
신비주의가 허물어져서?
서태지를 닿을 수 없는 존재라고 여겼는가..
0909 컴백 인터뷰에서 서태지가 말했다.
자신은 메시아나 영웅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하는 우리나라 가요를 조금은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끈 한 뮤지션으로 남길 바란다고..
이번 다큐에서도 서태지가 말했다.
사람들이 자기 보고 예전과 다르다고 변했다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정작 자신은 처음부터 변한 게 하나도 없다고..
서태지를 서태지로 만든 건 팬들이었다.
서태지는 이래야 돼.. 이러니까 서태지야..
그대들 스스로가 만든 서태지다.
정작 서태지 자신은 처음부터 아무 의도도 없었고 신비롭지도 않았다.
그냥 자기가 하고싶은 음악 만들고 그걸 좋아해주는 자신의 팬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한 뮤지션이었다.
그 어느 가수가 한 앨범에 팬들에게 바치는 곡을 3 곡이나 넣는단 말인가..
서태지가 변한 게 아니라 단지 이제까지 한번도 하지않은 걸 이번에 보여줬을 뿐이다.
난 평론가들의 말은 거의 듣지 않는다.
이론만 빠삭한 녀석들이다.
음악 한번 만들어 본 적 없이 듣기만 하는 사람들이 하는 평론에 과연 의미가 있을까..
기껏 한다는 게 자신의 생각없이 외국 음악과 비교하는 것이 전부다.
농구를 제대로 해 본 사람만이 마이클 조던의 플레이가 경이롭다는 걸 안다.
원래 영어를 해석하는 건 쉽다.
그러나 똑같은 걸 영어로 말하게 하면 어떤가..
그리고 장르가 예전에 했던 것과 비스무리해서 실망인가?
새로운 그 어떤 무언가가 없어서 허전한가?
그 누가 서태지는 새 앨범 낼 때마다 꼭 새로운 장르 해야한다고 규정지었나..
서태지가 언제 자기 입으로 나 앞으로 발매되는 앨범마다 새로운 거만 할테니 기대하라고 한마디라도 한적이 있는가..
그대들이 쌓아올린 서태지 레고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 서태지 죽이기라는 말까지 있었다.
그때 서태지를 죽인 건 언론이었다.
견디다 못한 그는 힘겹게 은퇴를 선언했고 지금은 다시 스스로를 힘있게 만들어서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에 그를 죽이려는 건 그가 그토록 절실히 믿었던 팬들인가..
언제나 기대치가 충복되면 더 큰 기대를 하게 된다.
제발 돌아와 달라고 기도하던 우리들이었다.
도대체 뭐가 변했다는 건가..
비꼬는 게 아니고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묻는 거다.
그의 음악이 시원찮고 그래서 실망했다면 모르지만 단지 그가 한 말이나 보여진 행동 때문에 실망했다면 정말 어이가 없다.
난 그냥 서태지가 돌아와줘서 고맙다는 생각 뿐이다.
은퇴하고 미국에 은둔해 생사도 모르던 태지가 다시 새롭게 한국 땅을 밟고 그의 끝나지 않은 노래를 들려주는 그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서태지가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 뿐인 이 땅의 나와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번에 태지에게 변한 걸 느껴 실망했다면 그딴 어처구니없는 글 남기지 말고 그냥 조용히 떠나라.
태지가 처음으로 우리에게 부탁이란 걸 했다
이런 팬들의 반응을 태지가 봤다면..
아마 그가 처음했던 이 부탁이 마지막 부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난 설사 나중에 태지가 정말 변한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낸 앨범에서 그의 가사와 멜로디에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전율을 느끼게 해줬던 서태지다.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 눈시울이 붉어지고 날 가슴벅차게 만들었던 건 바로 서태지의 음악이었다.
난 영원한 서태지 팬으로 남겠다.
그리고 서태지 팬이었던 걸 자랑스러워 할 것이고 이 대한민국 땅에서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는 걸 한국말로 된 그런 우리나라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에 평생 감사하게 여길 것이다.
written by 강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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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봐여 갔다가 좋은 글인거 같아 다시 퍼옵니다...
중복이면 대략 낭패겠지만, 한번쯤은...차분히 꼭 읽어보고 생각해볼 문제라 생각되어...
글쓰신 분에겐 직접적인 허락을 받지못한 점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