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셔야 할겁니다.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최고의
포크 발라드 가수로 변진섭을 꼽는다는것을 아신다면 이해가 더욱쉬울것입니다.
그때 서태지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랩으로된 댄스뮤직(1집) 그리고 힙합(2집)이라는
음악을들고 나왔는데 그때 우리나라엔 랩이라는 용어조차도 상당히 이질적이고 생소한 단어 였습니다.
한 예로 1993년 당시 mbc 일요일일요일 밤에라는 프로그램에
2집 발매후 첫방송을 햇는데 거기서 mc를 보던 이영자와
김건모 님과 서태지님이 한 문답중에
mc:"이번음악이 무엇입니까?"
태지:"이번 음악은 힙합입니다."
mc:"힙합? 힙합이 뭐죠?"
태지:힙합은 비트를 중심으로 브레이킨이라는 춤과 속사포같은
랩... 그리고 헐렁한 패션등으로 이루어진.....
저희들이 입고 있는게 힙합패션입니다.
mc:"그래요" 희안하군요. 바지가 엉덩이에 걸쳐있고 통이
굉장히 크네요. 꼭 몸뺴바지 같은...
이런 문답이 있습니다. 그 방송 보실수 있으면 꼭 보십시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변화에 무심하고
문화에 관해 무지했는지 알수있습니다.
그런 음악을 처음가지고 언더가 아닌 오버에서 그런음악을
시도한다는것 자체가 아주 획기적이고 모험이였다는 것을 아셔야 할것입니다.
현실에 안주한다면 트로트와 포크발라드를 가지고 거기에다 덧붙혀서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를 들고 나가야지 인기가수가 되는 정석코스였죠.
하지만 서태지는 그렇지 않고 새로운것을 들고나갔죠.
그것을 10여년이 지난 지금 안티들은 외국음악을 수입했다
어찌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건 너무나도 취약점이 많은 비약
적인 논리라는것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사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공격할 구석이 너무도 많지만
딱 하나만 말씀드려 그것을 비유하자면 죽을목숨 구해주었더니 은혜는 모르고 보따리 까지
내어놓으라고 하는격입니다.
만약 서태지가 그때 당시 안나왔다면 우리나라는 지금도 포크 발라드 일색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본질적인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거든요.
조선시대 흥선대원군때를 생각해보면 알겁니다.
서태지는 외국음악을 수입해서 들려준게 아니라 그때 당시 우리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어서
우리음악이시대에 뒤쳐지지 않고 발전할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대중의 귀를 넓혀주고 현재 대중음악 시장의 초석을 세운 가수라는걸 알아야 할것입니다.
사실 만약 서태지가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시대적 흐름으로 봤을때 언젠가는
서태지와 비슷한 가수가 나왔을것이나 서태지가 충격적이고 실험이라는 코드로 불려지는건
그 시기가 아직 신세대라는 세대가 정립이 안되고 하나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억압되어 있을떄 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신새대의 시작을 "서태지" 로 보고 X세대니
Y세대니 하는것은 서태지라는 코드에서 파생된것임을 음악사를 공부하다 보면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안티들은 서태지를 신비주의적이라고 말하는데
그 말씀은 상당히 듣기 거북한 말입니다.
신비주의적이라구요??
요즘가수들을 보면 너나 할것없이 음반활동후 다음음반을 준비하기위해 일정기간의 휴식기를 갖습니다.
그것을 우리나라에서 제일처음으로 한 사람이 바로 서태지 입니다.
하나의 이미지 관리차원이죠. 서태지 이전에는 가수는 음반하나를 내면 아주 지겨워질때까지
활동하는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서태지는 달리했죠.
그때 당시 기사를 보면 제목에
"서태지와아이들, 2집음반위해 시한부 활동중단" 충격
가요계 사상 전대미문의 음반준비 시한부 활동중단 선언....
이런기사가 있는것을 볼수있습니다.
요즘은 개나 소나 다하는 거지만 그것을 처음으로 한 사람이 바로 서태지입니다.
요즘 가수들한테는 거의 관례처럼 되버렸죠. 그걸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든게 바로 서태지인데
서태지가 신비주의?? 뭐가 이상하지 않나요?
서태지가 신비주의면 서태지가 먼저 한것을 따라하는
대한민국 모든가수들은 전부 서태지 모방가수들... 서태지 아류작이라는 소리인데 이것도 어이없죠.
그냥 한 개인이 너무 잘나서 질투 하는 말인것으로 밖에 안들립니다.
그리고 또 안티들은 "언론 보도와 우리나라 기사 등등이 많은 광고를 해주었고.." 라고 말합니다.
서태지를 언론이 광고했다구요?
"서태지 죽이기" 라는말 못들어보셨습니까?
서태지와아이들 3집시절에 백워드 매스킹을하면 사탄의 소리가
들린다는 말은 들어보셨을겁니다.
그리고 항상 서태지를 죽이기 위해 앞장섰던게 언론입니다.
서태지를 신비주의니 뭐니로 욕하고 공중파 방송에
고분고분하지않다고 2000년 당시 울트라매니아가 모든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는데도 kbs는 순위에서 집계를 없앴죠.
그런데도 언론에서 광고를 해주었다구요?
서태지가 언론의 관심에서 항상 벗어날수 없었던건 대중이 그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대중이 서태지를 원하지 않았다면 은퇴한지 5년이 지난 가수의 컴백하나(2000년)에
온나라가 그해 여름이 들썩일정도에 효과는 못냅니다.
5년동안 은거하고 방송한번 출현안하고 출시한 음반이 100만장을 넘었다는 사실에서 그것을
확인할수 있죠.그리고 서태지 안티들은 즉 일방적인 사랑
" 태지오빠니까 이런식으로 앨범 팔고 다시 다른 나라 가는것이 제가보기에 상당히 안좋게 보입니다".
라고 말하나 그것도 허점투성이 주장이죠. 서태지가 100만에 가까운 매니아를 가질수 있을정도에
힘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의 음악입니다. 음악과 더불어 90년대 문화전반을 관통한 문화적 업적도 한몫했죠.
서태지가 이때까지 만들어 놓은 업적을 나열해 보자면
1집(92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랩과 댄스뮤직을 선보임.....
스쿨룩-패션이라는 새로운 패션으로
원색의 귀여운 의상을 유행시킴
(쉽게 말해서 h.o.t 캔디할때 의상이 스쿨룩 패션이죠.)
그 스쿨룩 패션이라는걸 처음 만들어내고 유행시킨 사람이
서태지입니다. "남자의 치마패션"을 처음 유행시킨 사람도 서태지죠.
서태지 이후 1집때 서태지 패션은 스쿨룩 패션으로 명명됨.
남자의 치마패션은 나중에 김원준등에 의해 더욱더 발전..
1집 기록- 데뷔한년도에 처음으로 연말시상식에서 신인상과 대상을 휩씀.
우리나라 가요계 사상 전후무한 일로 지금까지도 서태지가 유일함.....
우리나라 가요계 사상 데뷔음반중 가장 많이 팔린 음반
(1집- 난 알아요- 170만장)
2등은 h.o.t 의 캔디(150만장)
"난 알아요"는 우리나라 랩댄스 뮤직의 교과서가 되어 랩댄스 뮤직의 기본틀인
랩-멜로디-랩으로 이루어지는 정석 형식을 완성함
이것을 모방하여 룰라의 백일쨰 만남을 비롯한 서태지 이후 수많은 "난 알아요" 모방 댄스뮤직이
나온기초가 되었으며 지금도 그 형식은 변함없이 유지됨...
2집(93년)-힙합이라는 음악을 우리나라에 소개....
음악을 비롯해서 브래이킨(춤) 그리고 의상패션을 유행시킴.
우리나라에 힙합패션이라는 새로운 패션문화를 만들고 유행시켜 정착시킴......
그해에 처음으로 서태지가 입고나온 힙합바지를 위시한
힙합패션은 최고 히트 패션이 되고 힙합음악과 브래이킨이라는
춤은 90년대의 문화코드중 하나로 성장... 나중에 듀스라는 그룹이 힙합을 더욱 발전시킴.
기록- 우리나라 가요계사상 처음으로 더블 밀리언셀러 기록(200만장이상판매)을 세움
김건모 3집(228만장-95년집계)이전 최고음반 판매량 기록....
(우리나라 최초의 밀리언 셀러(100만장) 가수는 조용필님...)
93년 서편제등과 더불어 93년을 가장 빛낸 3S 로 선정.
연말시상식에서 "올해의 최고 프로듀서상 수상"
"kbs 를 제외하고 골든디스크(본상) 비롯한 타방송사, 여러가지 신문사 다른곳의
본상과 대상 여러 챠트를 휩씀- (비공식적인 기록도 포함. 여론조사 등등)
(kbs는 당시 김수희씨가 "애모"라는 곡으로 받음)
힙합이라는 장르와 더불어 힙합발라드라는 장르를 우리나라에 새로만든 장본인이 서태지임.
"수시아" 라는곡에서 rpm이 180을 상회하는 레이브 음악이라는 것을 선보임.... (역시 우리나라 최초)
그 이후 95년 REF라는 레이브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는 그룹이 나오는 기반이 됨..
서태지와 아이들 1집 2집은 90년대에서 현재까지 우리 대중음악계의 댄스뮤직, 발라드 음악을 비롯한
모든 컴퓨터 음악의 교과서적인 음악으로 평가받고있음. 사실 서태지음악이 처음나온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비교해보면 다른게 없음.
힙합발라드의 교과서로 평가받는 "이밤이 깊어가지만" 이라는 곡의 리듬구성을 요즘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것을 확인할수있음...
3집(94년)- 깔끔한 매이드풍의 정장차림....
발해를 꿈꾸며에서 태극기로 만든옷을 유행시켰으며 손에 수건을 감는 것이 유행
"언론의 서태지 죽이기"로 인해 "백워드 매스킹"이라는 것을 유행시켰으며 기존가요의 사랑타령
가사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회, 교육문제를 담은 가사를 작사..
언론의 서태지 죽이기로 인해 많은 활동을 못함.
기록-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회, 교육문제를 담은 가사를 작사..
강헌, 임진모를 위시한 수많은 대중음악 평론가를 만들어냄..
서태지 이전에는 음악평론가라는게 대중에게 알려지지도 않았고 거의 없었음...
파격적인 음악과 참신한 가사로 인해 "10대 대통령" 이라는 칭호를 받음... 강헌은 1집때부터 많은
실험과 모험을 감행하고 랩댄스뮤직과 힙합을 비주류장르에서 우리나라의 주류장르로 만들어 버린
서태지를 "주류질서의 반역자"라는 칭호로 부름.
우리나라에서 파파라치라는게 공식적으로 활동하고 알려진게 이때부터 입니다.
서태지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여 기사로 냈죠.
자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 많고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이 부담스럽던 태지님은 외국가서
음악을 가장 잘 만들수 잇는 환경을 찾아가서 음악을 만드는 것임을 알아야지요.
괜히 "서태지 파파라치" 라는 말이 생겨났겠습니까?
4집-우리나라에 깽스터랩이라는 장르를 처음소개...
(h.o.t가 나중에 전사의후예를 가지고 나오는 기초가 됨-__-;;)
스노우 보드라는 스포츠 패션을 유행시킴..... 96년 당시 스노우보드 라는 스포츠는 대중적인 스포츠가
아니었으나 서태지로 인해 대중적인 스포츠가 됨... 스노우 보드 패션이라는 것을 유행시킨 장본인...
그해에 스노우보드 패션업계는 서태지로 인해 무려 40%라는
경이적인 성장을 함.
우리나라 방송사상 처음으로 올칼라 염색을 한 사람도 서태지 입니다. 필승때 처음했죠.
기록-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앨범 하룻만에 55만장 이상판매.
하룻동안 가장많은 판매기록으로 기록 세움.
(나중에 2000년 서태지 솔로 2집때 솔로2집 음반이 무려
하룻만에 90만장이 나가면서 가요계 사상 최고의 기록세움.)
combackhome 으로 인해 가출청소년이 집으로 돌아오는 전후무후한 일을 만들어냄.
comebackhome 발표하자 마자 바로 1위로 차트에 오름.
(이것 역시 가요계 사상 전후무후한 기록...)
서태지 은퇴 9시뉴스 첫 메인뉴스로 보도.
(한 대중음악인의 은퇴가 9시뉴스에 보도되기는
사상처음있는일...)
서태지 은퇴후 서태지는 90년대 문화의 상징 또는 90년대 문화를 관통하는 아이콘.... 문화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대중에게서 받음.
음악평론가 사이에선 90년대 음악사에서 댄스또는 힙합이라는 장르 이름이 아닌
"서태지"라는 새로운 이름의 장르와 문법식을 만들었다고 까지 평가받음".
한명의 대중음악인으로선 전후무후할 정도로 많은 평론과 평전이 쏱아짐...
그외에 공식기록- 서태지와 아이들2집이후 음반발표시마다 항상 9시뉴스에 컴백소식 보도...
대중음악계 사상 서태지가 처음이자 현재까지 마지막인 기록...
(조용필의 공연소식을 전한적은 있어도 컴백시마다 꼬박꼬박 전하는 뮤지션은 서태지가 지금까지 유일)
(3집때는 음반발매소식까지 뉴스데스크에 보도됨
당일 초판물량 30만장이 4시간 반만에 동이났다는 소식..)
97년 삼성 경제 기획연구소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50년역사에서 가장 히트한 상품 50가지에서
1위로 선정됨
"96년 시대유감이라는 곡으로 "공윤"이라는 막강한 벽을 무너뜨리는 업적을 이룸- 이것으로 인해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는 결과를 나음...
92년 난 알아요 당시 초상권과 저작권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확립시킴...
(서태지 이전 초상권과 저작권의 개념은 거의 전무한 수준이었음)
뮤직비디오라는것을 가장 먼저 대중화시킨 장본인도 서태지....-여기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보고(뮤직비디오) 듣고(새로운 음악) 느끼는(참신하고 새로운
가사로 공감대 형성) 음악이라는 말이 나옴..
96년 서지원 사망사건을 제치고 가장 충격적인 일로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가 선정되었음"
현재 제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2학년 음악교과서에 서태지와 아이들 "발해를 꿈꾸며" 실림...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것으로 알고있음...
90년대 "서태지 패션학" 이라는 책 출간- 이 책은 유수의 대학의 문화전공학과와 패션학과의 90년대
문화, 패션 공식 강의 교재로 채택됨
98년 삼성경제기획 연구원에서 "서태지 마케팅"을 주제로하여 사원들에게 강의함...
95~98년, 서태지 은퇴와 서태지 패션, 문화 전반에 걸친것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영역에 빈번하게 나옴....
(-사실 대중음악인이 수학능력시험에까지 빈번하게 나왔다면 그 파급효과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수 있음
월드컵이 2002년 수능시험에 나왔으니 잘 알것임.)
2000년 이후 서태지 마케팅과 문화및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미친영향을 가지고 국회의원중
한 사람이 보고서를 만들어 국회에 제출...- 이것 역시 처음 있는 일이었음.
두산엔사이버 백과사전에 "서태지" 라는 이름으로 실림
서태지 이후 음악성을 평가하는 기준에서 가수는 작곡과 프로듀싱을 할줄 알아야 진정한
가수로 대접받음..
(서태지가 모든 음반을 데뷔음반부터 프로듀싱했기 떄문에
서태지 이후 모든 가수들이 평가받는 기준에서 작곡과 프로듀싱이 들어가게 됨
이것도 서태지 이후 생겨버린 특이한 문화현상.
원래 서태지 이전에는 가수는 노래만 잘부르면 가수대접을 받았으나 서태지 이후 노래만
부르는것으로는 가수대접을 못받음. 작곡과 프로듀싱도 할줄 알아야함)
이 모든 기록은 자료에 기반한 것임을 알림....
그래서 거짓된것이 없습니다.
비공식적으로는 이것보다 훨씬많습니다.
원한다면 사료를 보여드릴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것을 보아서 90년대 문화와 패션,음악,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이르기까지
현재 우리가 모두 듣고 즐기는 한국 음악과 패션은 서태지에서 파생된 문화코드임을 알수 있습니다.
지금 안티들이 즐기는 문화는 모두 서태지가 기반을 닦아놓고 만든어놓은
서태지라는 코드에서 파생된 겁니다. 서태지가 우리나라 음악시장을 지금까지 키워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젠 인터넷시대가 되어서 조금 듣고 안다 싶으니까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욕을하는 사람들이 우수운일 아닙니까? 제가 안티님들의 의견을 정확하게 반박할수있는 비유를
들어들이지요.우리나라 천태종의 개조는 대각국사 의천입니다.
하지만 천태종의 원래 개조는 중국의 천태대사 지의입니다.
님의 말대로라면 대각국사 의천은 천태종을 수입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전파한겁니까?
분명히 한국정서에 맞게 편성하여 천태종의 민중에 전파하여 천태종의 개조가 된겁니다.
고로 서태지를 대각국사 의천에 비유하고 음악을 천태종에 비유한다면 우수운 소리일 뿐이죠.
(이거 말해서 태클걸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죠. 대각국사 의천이 우리나라 천태종 개조이고
큰 스님으로 인정받는건 바뀔수 없는 사실이니... 의천스님을 천태종 개조라고 하지
"천태종 수입자 라고는 안합니다."
천태종은 중국의 천태국사 지의가 개조한 종파인데 의천이 수입했다는
소리는 듣지 않죠. 선각자니 개조 소리는 들을지 몰라도...)
서태지는 시대를 앞서간것 뿐입니다. 다름사람과는 달리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인지할수 있는
뮤지션이지요. 서태지에 한번빠지면 정신 못차립니다. 그러니 님도 너무 빠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__^
내용출처 - 서태지에 관한것은 여러가지 기록..... 그리고 대각국사 의천애기는 내 머리에서..
지식iN 의견 의견쓰기
[기타] cream2580 (2003-07-03 17:52)
짝짝짝~~!!
[내용추가] corps2 (2003-10-28 23:28)
아주 훌륭하고 정확한 말씀입니다만 도입부분의 글들이 약간 틀렸습니다. 서태지 이전에 힙합 패션 및 장르를 들고 나온자는 현진영입니다. '슬픈 마네킹' 그리고 참고로 랩또한 서태지가 최초의 시도자는 아닙니다. 상세히 조사해보면 알겁니다.
[내용추가] chunlangsung (2003-10-29 22:55)
내용추가합니다.
랩은... 말만 빠르다고 랩이 아닙니다.
랩의 원류를 따지자면....
홍서범의 김삿갓... 그리고 신해철도 랩을 시도한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랩의선구자.. 즉 시초는
서태지일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서태지는 말만 빠르게한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강세를
줌으로서... "이밤이 흐르고 흐르면"이 부분에서
강세 참고.. 전체적으로 리듬감있는 리드미컬한 랩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적인 랩의 원류는
어쩌니 저쩌니 말이 많아도 서태지일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힙합...
우리나라 힙합을 오버에서 대중으로 이끌어 올린것하며
패션은 서태지가 유행시킨것입니다.
그 전에 뭐가 있었고 있었다고 해도....
항상 시작은 서태지로 보는 시각이 강합니다.
다른 여러사람들의 평론과 견해와 말씀을
인지하시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의하기] jung1983 (2003-11-23 05:48)
chunlangsung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서태지에관한 여러가지질문에대한 님이 작성하신답을 보았는데요 몰랐던사실도 알게되고 다시한번 서태지의 대단함에 대해서 느낄수있으서 좋았습니다^^
[내용추가] chunlang12 (2003-12-16 15:51)
역시 사람들이 서태지 서태지 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난 그때 좀 어려서 잘 모르지만.. 누나가 애기하기로
우리나라에 서태지만큼 인기있는 가수가 다시는 없을거라고.. 서태지 이후에 나온 H.O.T 젝스키스 이런건 인기에서 게임도 안된다고 하던데... 야인시대 보면 김두한이 주먹황제에서 나중 명동... 종로... 동대문 이렇게
갈라지는데.. H.O.T가 가장 세력이 컷던 동대문이고
젝스키스가 종로정도라면 서태지는 주먹황제
통합챔피언인 김두한이라고 비유하는게 맞다고...
그러던데..나중에 제2세대 아이돌 그룹 H.O.T시대는 남자 여자 좋아하는 가수가 틀려지지만 여자는 H.O.T
젝스키스.. 남자는 핑클.. ses.. 이렇게 갈라지지만
서태지때는 그때 남자 여자 할것없이 10대의 99%이상은 전부 서태지에 미쳐살았다고... 누나가 그러던데요.
서태지 난 알아요랑 하여가때는 우리나라 월드컵 당시보다 더 심할정도로 사람들이 열광적이었다거... 그러네요.
[내용추가] chunlang12 (2003-12-16 15:54)
근데 나도 읽으면서 놀라운게 우리나라의 랩댄스 뮤직부터.. 힙합... 깽스터... 백워드 매스킹... 스노우보드라는 스포츠... 뮤직비디오도 그렇고 초상권도 그렇고.. 아예 서태지 혼자서 다 유행시키고 만들어 놓았네요.-__-;;
그럼 다른 가수들은 뭐한거야?-__-;; 참.. 어이가 없네.
누나가 그러기로 힙합을 발전시킨 듀스.. 그리고 신해철
빼고는 뭐... 그다지 꼽을만한 가수가 없다고..
그러네요. 그나마 김건모.. 신승훈이 "말 그대로
대중가수"로서 인기가 좀 있었다고.... -_-;;
[내용추가] chunlang12 (2003-12-16 15:57)
참.. 그리고 서태지 음반 판매량 기록있죠?
역대 데뷔음반 판매기록이요.
그거 우리집에서 있어요. 예전에 서울신문사에서 발행한
티비가이드라는 잡지가 있었는데여.
아주 오래전에 그거 96년12월판 정도에 음반 판매량에
대한 설명 나오면서 이색설문으로 우리나라 데뷔음반중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은?
이라는 챠트가 있거든요?
거기서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정확히 170만장으로
1등.. hot 캔디 150만장으로 2등..이 나와 있네요. ^^
우리집에 있어요 ㅎㅎ
[내용추가] chunlang12 (2003-12-16 16:04)
그리고 한 가지더... 음반협회 공식 기록은 좀 낮추어서
서태지 음반 판매량 180만장~200만장이라고 나오거든요?
근데 실제는 200만장을 훨씬 오버했다고..
서태지가 워낙 인기가 많다보니까 그때 은밀히
사람들이 서태지질투하고 미워하는 가수나 관계자
사람들이 많았다고..-__-;;
그래서.. 일부러 서태지 기록은 낮추고...
김건모나 신승훈.. 같은 다른 가수들의 음반판매량은
부풀리는 경향이 있었데요.
실제 완벽하게 정확히 집계하면 김건모가 가장 많이 음반판매한 기록이 아니라 서태지가 가지고 있을수 있다고 합니다.실제 서태지 음반중 가장 낮은 판매량을 보이는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의 공식기록이 120만장 인데요.
실제 서태지가 말했는데.. 기획사가 집계하기로
아무리 못해도 130만장 이상은 나갔다고 하네요.
근데 일부러 서태지가 낮추어서 말한거래요. 음반관계자들이 또 뭐라고 할까봐 짜증나서...
서태지와 아이들 2집 진짜 200만장 넘은거 100%확실하답니다. ㅎㅎ
[내용추가] chunlang12 (2003-12-16 16:11)
참.. 서태지는 뮤지션을 넘어 아티스트래요.
누나가 ㅎㅎ.. HOT는 아이돌 그룹이지만..-_-;;
내용출처: chunlangsung님 답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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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까지 읽으신 분!!!!
그대의 인내심에 박수를~!!! 짝짝짝짝~~~♬
포크 발라드 가수로 변진섭을 꼽는다는것을 아신다면 이해가 더욱쉬울것입니다.
그때 서태지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랩으로된 댄스뮤직(1집) 그리고 힙합(2집)이라는
음악을들고 나왔는데 그때 우리나라엔 랩이라는 용어조차도 상당히 이질적이고 생소한 단어 였습니다.
한 예로 1993년 당시 mbc 일요일일요일 밤에라는 프로그램에
2집 발매후 첫방송을 햇는데 거기서 mc를 보던 이영자와
김건모 님과 서태지님이 한 문답중에
mc:"이번음악이 무엇입니까?"
태지:"이번 음악은 힙합입니다."
mc:"힙합? 힙합이 뭐죠?"
태지:힙합은 비트를 중심으로 브레이킨이라는 춤과 속사포같은
랩... 그리고 헐렁한 패션등으로 이루어진.....
저희들이 입고 있는게 힙합패션입니다.
mc:"그래요" 희안하군요. 바지가 엉덩이에 걸쳐있고 통이
굉장히 크네요. 꼭 몸뺴바지 같은...
이런 문답이 있습니다. 그 방송 보실수 있으면 꼭 보십시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변화에 무심하고
문화에 관해 무지했는지 알수있습니다.
그런 음악을 처음가지고 언더가 아닌 오버에서 그런음악을
시도한다는것 자체가 아주 획기적이고 모험이였다는 것을 아셔야 할것입니다.
현실에 안주한다면 트로트와 포크발라드를 가지고 거기에다 덧붙혀서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를 들고 나가야지 인기가수가 되는 정석코스였죠.
하지만 서태지는 그렇지 않고 새로운것을 들고나갔죠.
그것을 10여년이 지난 지금 안티들은 외국음악을 수입했다
어찌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건 너무나도 취약점이 많은 비약
적인 논리라는것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사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공격할 구석이 너무도 많지만
딱 하나만 말씀드려 그것을 비유하자면 죽을목숨 구해주었더니 은혜는 모르고 보따리 까지
내어놓으라고 하는격입니다.
만약 서태지가 그때 당시 안나왔다면 우리나라는 지금도 포크 발라드 일색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본질적인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거든요.
조선시대 흥선대원군때를 생각해보면 알겁니다.
서태지는 외국음악을 수입해서 들려준게 아니라 그때 당시 우리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어서
우리음악이시대에 뒤쳐지지 않고 발전할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대중의 귀를 넓혀주고 현재 대중음악 시장의 초석을 세운 가수라는걸 알아야 할것입니다.
사실 만약 서태지가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시대적 흐름으로 봤을때 언젠가는
서태지와 비슷한 가수가 나왔을것이나 서태지가 충격적이고 실험이라는 코드로 불려지는건
그 시기가 아직 신세대라는 세대가 정립이 안되고 하나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억압되어 있을떄 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신새대의 시작을 "서태지" 로 보고 X세대니
Y세대니 하는것은 서태지라는 코드에서 파생된것임을 음악사를 공부하다 보면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안티들은 서태지를 신비주의적이라고 말하는데
그 말씀은 상당히 듣기 거북한 말입니다.
신비주의적이라구요??
요즘가수들을 보면 너나 할것없이 음반활동후 다음음반을 준비하기위해 일정기간의 휴식기를 갖습니다.
그것을 우리나라에서 제일처음으로 한 사람이 바로 서태지 입니다.
하나의 이미지 관리차원이죠. 서태지 이전에는 가수는 음반하나를 내면 아주 지겨워질때까지
활동하는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서태지는 달리했죠.
그때 당시 기사를 보면 제목에
"서태지와아이들, 2집음반위해 시한부 활동중단" 충격
가요계 사상 전대미문의 음반준비 시한부 활동중단 선언....
이런기사가 있는것을 볼수있습니다.
요즘은 개나 소나 다하는 거지만 그것을 처음으로 한 사람이 바로 서태지입니다.
요즘 가수들한테는 거의 관례처럼 되버렸죠. 그걸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든게 바로 서태지인데
서태지가 신비주의?? 뭐가 이상하지 않나요?
서태지가 신비주의면 서태지가 먼저 한것을 따라하는
대한민국 모든가수들은 전부 서태지 모방가수들... 서태지 아류작이라는 소리인데 이것도 어이없죠.
그냥 한 개인이 너무 잘나서 질투 하는 말인것으로 밖에 안들립니다.
그리고 또 안티들은 "언론 보도와 우리나라 기사 등등이 많은 광고를 해주었고.." 라고 말합니다.
서태지를 언론이 광고했다구요?
"서태지 죽이기" 라는말 못들어보셨습니까?
서태지와아이들 3집시절에 백워드 매스킹을하면 사탄의 소리가
들린다는 말은 들어보셨을겁니다.
그리고 항상 서태지를 죽이기 위해 앞장섰던게 언론입니다.
서태지를 신비주의니 뭐니로 욕하고 공중파 방송에
고분고분하지않다고 2000년 당시 울트라매니아가 모든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는데도 kbs는 순위에서 집계를 없앴죠.
그런데도 언론에서 광고를 해주었다구요?
서태지가 언론의 관심에서 항상 벗어날수 없었던건 대중이 그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대중이 서태지를 원하지 않았다면 은퇴한지 5년이 지난 가수의 컴백하나(2000년)에
온나라가 그해 여름이 들썩일정도에 효과는 못냅니다.
5년동안 은거하고 방송한번 출현안하고 출시한 음반이 100만장을 넘었다는 사실에서 그것을
확인할수 있죠.그리고 서태지 안티들은 즉 일방적인 사랑
" 태지오빠니까 이런식으로 앨범 팔고 다시 다른 나라 가는것이 제가보기에 상당히 안좋게 보입니다".
라고 말하나 그것도 허점투성이 주장이죠. 서태지가 100만에 가까운 매니아를 가질수 있을정도에
힘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의 음악입니다. 음악과 더불어 90년대 문화전반을 관통한 문화적 업적도 한몫했죠.
서태지가 이때까지 만들어 놓은 업적을 나열해 보자면
1집(92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랩과 댄스뮤직을 선보임.....
스쿨룩-패션이라는 새로운 패션으로
원색의 귀여운 의상을 유행시킴
(쉽게 말해서 h.o.t 캔디할때 의상이 스쿨룩 패션이죠.)
그 스쿨룩 패션이라는걸 처음 만들어내고 유행시킨 사람이
서태지입니다. "남자의 치마패션"을 처음 유행시킨 사람도 서태지죠.
서태지 이후 1집때 서태지 패션은 스쿨룩 패션으로 명명됨.
남자의 치마패션은 나중에 김원준등에 의해 더욱더 발전..
1집 기록- 데뷔한년도에 처음으로 연말시상식에서 신인상과 대상을 휩씀.
우리나라 가요계 사상 전후무한 일로 지금까지도 서태지가 유일함.....
우리나라 가요계 사상 데뷔음반중 가장 많이 팔린 음반
(1집- 난 알아요- 170만장)
2등은 h.o.t 의 캔디(150만장)
"난 알아요"는 우리나라 랩댄스 뮤직의 교과서가 되어 랩댄스 뮤직의 기본틀인
랩-멜로디-랩으로 이루어지는 정석 형식을 완성함
이것을 모방하여 룰라의 백일쨰 만남을 비롯한 서태지 이후 수많은 "난 알아요" 모방 댄스뮤직이
나온기초가 되었으며 지금도 그 형식은 변함없이 유지됨...
2집(93년)-힙합이라는 음악을 우리나라에 소개....
음악을 비롯해서 브래이킨(춤) 그리고 의상패션을 유행시킴.
우리나라에 힙합패션이라는 새로운 패션문화를 만들고 유행시켜 정착시킴......
그해에 처음으로 서태지가 입고나온 힙합바지를 위시한
힙합패션은 최고 히트 패션이 되고 힙합음악과 브래이킨이라는
춤은 90년대의 문화코드중 하나로 성장... 나중에 듀스라는 그룹이 힙합을 더욱 발전시킴.
기록- 우리나라 가요계사상 처음으로 더블 밀리언셀러 기록(200만장이상판매)을 세움
김건모 3집(228만장-95년집계)이전 최고음반 판매량 기록....
(우리나라 최초의 밀리언 셀러(100만장) 가수는 조용필님...)
93년 서편제등과 더불어 93년을 가장 빛낸 3S 로 선정.
연말시상식에서 "올해의 최고 프로듀서상 수상"
"kbs 를 제외하고 골든디스크(본상) 비롯한 타방송사, 여러가지 신문사 다른곳의
본상과 대상 여러 챠트를 휩씀- (비공식적인 기록도 포함. 여론조사 등등)
(kbs는 당시 김수희씨가 "애모"라는 곡으로 받음)
힙합이라는 장르와 더불어 힙합발라드라는 장르를 우리나라에 새로만든 장본인이 서태지임.
"수시아" 라는곡에서 rpm이 180을 상회하는 레이브 음악이라는 것을 선보임.... (역시 우리나라 최초)
그 이후 95년 REF라는 레이브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는 그룹이 나오는 기반이 됨..
서태지와 아이들 1집 2집은 90년대에서 현재까지 우리 대중음악계의 댄스뮤직, 발라드 음악을 비롯한
모든 컴퓨터 음악의 교과서적인 음악으로 평가받고있음. 사실 서태지음악이 처음나온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비교해보면 다른게 없음.
힙합발라드의 교과서로 평가받는 "이밤이 깊어가지만" 이라는 곡의 리듬구성을 요즘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것을 확인할수있음...
3집(94년)- 깔끔한 매이드풍의 정장차림....
발해를 꿈꾸며에서 태극기로 만든옷을 유행시켰으며 손에 수건을 감는 것이 유행
"언론의 서태지 죽이기"로 인해 "백워드 매스킹"이라는 것을 유행시켰으며 기존가요의 사랑타령
가사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회, 교육문제를 담은 가사를 작사..
언론의 서태지 죽이기로 인해 많은 활동을 못함.
기록-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회, 교육문제를 담은 가사를 작사..
강헌, 임진모를 위시한 수많은 대중음악 평론가를 만들어냄..
서태지 이전에는 음악평론가라는게 대중에게 알려지지도 않았고 거의 없었음...
파격적인 음악과 참신한 가사로 인해 "10대 대통령" 이라는 칭호를 받음... 강헌은 1집때부터 많은
실험과 모험을 감행하고 랩댄스뮤직과 힙합을 비주류장르에서 우리나라의 주류장르로 만들어 버린
서태지를 "주류질서의 반역자"라는 칭호로 부름.
우리나라에서 파파라치라는게 공식적으로 활동하고 알려진게 이때부터 입니다.
서태지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여 기사로 냈죠.
자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 많고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이 부담스럽던 태지님은 외국가서
음악을 가장 잘 만들수 잇는 환경을 찾아가서 음악을 만드는 것임을 알아야지요.
괜히 "서태지 파파라치" 라는 말이 생겨났겠습니까?
4집-우리나라에 깽스터랩이라는 장르를 처음소개...
(h.o.t가 나중에 전사의후예를 가지고 나오는 기초가 됨-__-;;)
스노우 보드라는 스포츠 패션을 유행시킴..... 96년 당시 스노우보드 라는 스포츠는 대중적인 스포츠가
아니었으나 서태지로 인해 대중적인 스포츠가 됨... 스노우 보드 패션이라는 것을 유행시킨 장본인...
그해에 스노우보드 패션업계는 서태지로 인해 무려 40%라는
경이적인 성장을 함.
우리나라 방송사상 처음으로 올칼라 염색을 한 사람도 서태지 입니다. 필승때 처음했죠.
기록-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앨범 하룻만에 55만장 이상판매.
하룻동안 가장많은 판매기록으로 기록 세움.
(나중에 2000년 서태지 솔로 2집때 솔로2집 음반이 무려
하룻만에 90만장이 나가면서 가요계 사상 최고의 기록세움.)
combackhome 으로 인해 가출청소년이 집으로 돌아오는 전후무후한 일을 만들어냄.
comebackhome 발표하자 마자 바로 1위로 차트에 오름.
(이것 역시 가요계 사상 전후무후한 기록...)
서태지 은퇴 9시뉴스 첫 메인뉴스로 보도.
(한 대중음악인의 은퇴가 9시뉴스에 보도되기는
사상처음있는일...)
서태지 은퇴후 서태지는 90년대 문화의 상징 또는 90년대 문화를 관통하는 아이콘.... 문화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대중에게서 받음.
음악평론가 사이에선 90년대 음악사에서 댄스또는 힙합이라는 장르 이름이 아닌
"서태지"라는 새로운 이름의 장르와 문법식을 만들었다고 까지 평가받음".
한명의 대중음악인으로선 전후무후할 정도로 많은 평론과 평전이 쏱아짐...
그외에 공식기록- 서태지와 아이들2집이후 음반발표시마다 항상 9시뉴스에 컴백소식 보도...
대중음악계 사상 서태지가 처음이자 현재까지 마지막인 기록...
(조용필의 공연소식을 전한적은 있어도 컴백시마다 꼬박꼬박 전하는 뮤지션은 서태지가 지금까지 유일)
(3집때는 음반발매소식까지 뉴스데스크에 보도됨
당일 초판물량 30만장이 4시간 반만에 동이났다는 소식..)
97년 삼성 경제 기획연구소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50년역사에서 가장 히트한 상품 50가지에서
1위로 선정됨
"96년 시대유감이라는 곡으로 "공윤"이라는 막강한 벽을 무너뜨리는 업적을 이룸- 이것으로 인해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는 결과를 나음...
92년 난 알아요 당시 초상권과 저작권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확립시킴...
(서태지 이전 초상권과 저작권의 개념은 거의 전무한 수준이었음)
뮤직비디오라는것을 가장 먼저 대중화시킨 장본인도 서태지....-여기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보고(뮤직비디오) 듣고(새로운 음악) 느끼는(참신하고 새로운
가사로 공감대 형성) 음악이라는 말이 나옴..
96년 서지원 사망사건을 제치고 가장 충격적인 일로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가 선정되었음"
현재 제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2학년 음악교과서에 서태지와 아이들 "발해를 꿈꾸며" 실림...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것으로 알고있음...
90년대 "서태지 패션학" 이라는 책 출간- 이 책은 유수의 대학의 문화전공학과와 패션학과의 90년대
문화, 패션 공식 강의 교재로 채택됨
98년 삼성경제기획 연구원에서 "서태지 마케팅"을 주제로하여 사원들에게 강의함...
95~98년, 서태지 은퇴와 서태지 패션, 문화 전반에 걸친것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영역에 빈번하게 나옴....
(-사실 대중음악인이 수학능력시험에까지 빈번하게 나왔다면 그 파급효과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수 있음
월드컵이 2002년 수능시험에 나왔으니 잘 알것임.)
2000년 이후 서태지 마케팅과 문화및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미친영향을 가지고 국회의원중
한 사람이 보고서를 만들어 국회에 제출...- 이것 역시 처음 있는 일이었음.
두산엔사이버 백과사전에 "서태지" 라는 이름으로 실림
서태지 이후 음악성을 평가하는 기준에서 가수는 작곡과 프로듀싱을 할줄 알아야 진정한
가수로 대접받음..
(서태지가 모든 음반을 데뷔음반부터 프로듀싱했기 떄문에
서태지 이후 모든 가수들이 평가받는 기준에서 작곡과 프로듀싱이 들어가게 됨
이것도 서태지 이후 생겨버린 특이한 문화현상.
원래 서태지 이전에는 가수는 노래만 잘부르면 가수대접을 받았으나 서태지 이후 노래만
부르는것으로는 가수대접을 못받음. 작곡과 프로듀싱도 할줄 알아야함)
이 모든 기록은 자료에 기반한 것임을 알림....
그래서 거짓된것이 없습니다.
비공식적으로는 이것보다 훨씬많습니다.
원한다면 사료를 보여드릴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것을 보아서 90년대 문화와 패션,음악,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이르기까지
현재 우리가 모두 듣고 즐기는 한국 음악과 패션은 서태지에서 파생된 문화코드임을 알수 있습니다.
지금 안티들이 즐기는 문화는 모두 서태지가 기반을 닦아놓고 만든어놓은
서태지라는 코드에서 파생된 겁니다. 서태지가 우리나라 음악시장을 지금까지 키워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젠 인터넷시대가 되어서 조금 듣고 안다 싶으니까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욕을하는 사람들이 우수운일 아닙니까? 제가 안티님들의 의견을 정확하게 반박할수있는 비유를
들어들이지요.우리나라 천태종의 개조는 대각국사 의천입니다.
하지만 천태종의 원래 개조는 중국의 천태대사 지의입니다.
님의 말대로라면 대각국사 의천은 천태종을 수입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전파한겁니까?
분명히 한국정서에 맞게 편성하여 천태종의 민중에 전파하여 천태종의 개조가 된겁니다.
고로 서태지를 대각국사 의천에 비유하고 음악을 천태종에 비유한다면 우수운 소리일 뿐이죠.
(이거 말해서 태클걸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죠. 대각국사 의천이 우리나라 천태종 개조이고
큰 스님으로 인정받는건 바뀔수 없는 사실이니... 의천스님을 천태종 개조라고 하지
"천태종 수입자 라고는 안합니다."
천태종은 중국의 천태국사 지의가 개조한 종파인데 의천이 수입했다는
소리는 듣지 않죠. 선각자니 개조 소리는 들을지 몰라도...)
서태지는 시대를 앞서간것 뿐입니다. 다름사람과는 달리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인지할수 있는
뮤지션이지요. 서태지에 한번빠지면 정신 못차립니다. 그러니 님도 너무 빠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__^
내용출처 - 서태지에 관한것은 여러가지 기록..... 그리고 대각국사 의천애기는 내 머리에서..
지식iN 의견 의견쓰기
[기타] cream2580 (2003-07-03 17:52)
짝짝짝~~!!
[내용추가] corps2 (2003-10-28 23:28)
아주 훌륭하고 정확한 말씀입니다만 도입부분의 글들이 약간 틀렸습니다. 서태지 이전에 힙합 패션 및 장르를 들고 나온자는 현진영입니다. '슬픈 마네킹' 그리고 참고로 랩또한 서태지가 최초의 시도자는 아닙니다. 상세히 조사해보면 알겁니다.
[내용추가] chunlangsung (2003-10-29 22:55)
내용추가합니다.
랩은... 말만 빠르다고 랩이 아닙니다.
랩의 원류를 따지자면....
홍서범의 김삿갓... 그리고 신해철도 랩을 시도한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랩의선구자.. 즉 시초는
서태지일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서태지는 말만 빠르게한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강세를
줌으로서... "이밤이 흐르고 흐르면"이 부분에서
강세 참고.. 전체적으로 리듬감있는 리드미컬한 랩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적인 랩의 원류는
어쩌니 저쩌니 말이 많아도 서태지일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힙합...
우리나라 힙합을 오버에서 대중으로 이끌어 올린것하며
패션은 서태지가 유행시킨것입니다.
그 전에 뭐가 있었고 있었다고 해도....
항상 시작은 서태지로 보는 시각이 강합니다.
다른 여러사람들의 평론과 견해와 말씀을
인지하시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의하기] jung1983 (2003-11-23 05:48)
chunlangsung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서태지에관한 여러가지질문에대한 님이 작성하신답을 보았는데요 몰랐던사실도 알게되고 다시한번 서태지의 대단함에 대해서 느낄수있으서 좋았습니다^^
[내용추가] chunlang12 (2003-12-16 15:51)
역시 사람들이 서태지 서태지 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난 그때 좀 어려서 잘 모르지만.. 누나가 애기하기로
우리나라에 서태지만큼 인기있는 가수가 다시는 없을거라고.. 서태지 이후에 나온 H.O.T 젝스키스 이런건 인기에서 게임도 안된다고 하던데... 야인시대 보면 김두한이 주먹황제에서 나중 명동... 종로... 동대문 이렇게
갈라지는데.. H.O.T가 가장 세력이 컷던 동대문이고
젝스키스가 종로정도라면 서태지는 주먹황제
통합챔피언인 김두한이라고 비유하는게 맞다고...
그러던데..나중에 제2세대 아이돌 그룹 H.O.T시대는 남자 여자 좋아하는 가수가 틀려지지만 여자는 H.O.T
젝스키스.. 남자는 핑클.. ses.. 이렇게 갈라지지만
서태지때는 그때 남자 여자 할것없이 10대의 99%이상은 전부 서태지에 미쳐살았다고... 누나가 그러던데요.
서태지 난 알아요랑 하여가때는 우리나라 월드컵 당시보다 더 심할정도로 사람들이 열광적이었다거... 그러네요.
[내용추가] chunlang12 (2003-12-16 15:54)
근데 나도 읽으면서 놀라운게 우리나라의 랩댄스 뮤직부터.. 힙합... 깽스터... 백워드 매스킹... 스노우보드라는 스포츠... 뮤직비디오도 그렇고 초상권도 그렇고.. 아예 서태지 혼자서 다 유행시키고 만들어 놓았네요.-__-;;
그럼 다른 가수들은 뭐한거야?-__-;; 참.. 어이가 없네.
누나가 그러기로 힙합을 발전시킨 듀스.. 그리고 신해철
빼고는 뭐... 그다지 꼽을만한 가수가 없다고..
그러네요. 그나마 김건모.. 신승훈이 "말 그대로
대중가수"로서 인기가 좀 있었다고.... -_-;;
[내용추가] chunlang12 (2003-12-16 15:57)
참.. 그리고 서태지 음반 판매량 기록있죠?
역대 데뷔음반 판매기록이요.
그거 우리집에서 있어요. 예전에 서울신문사에서 발행한
티비가이드라는 잡지가 있었는데여.
아주 오래전에 그거 96년12월판 정도에 음반 판매량에
대한 설명 나오면서 이색설문으로 우리나라 데뷔음반중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은?
이라는 챠트가 있거든요?
거기서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정확히 170만장으로
1등.. hot 캔디 150만장으로 2등..이 나와 있네요. ^^
우리집에 있어요 ㅎㅎ
[내용추가] chunlang12 (2003-12-16 16:04)
그리고 한 가지더... 음반협회 공식 기록은 좀 낮추어서
서태지 음반 판매량 180만장~200만장이라고 나오거든요?
근데 실제는 200만장을 훨씬 오버했다고..
서태지가 워낙 인기가 많다보니까 그때 은밀히
사람들이 서태지질투하고 미워하는 가수나 관계자
사람들이 많았다고..-__-;;
그래서.. 일부러 서태지 기록은 낮추고...
김건모나 신승훈.. 같은 다른 가수들의 음반판매량은
부풀리는 경향이 있었데요.
실제 완벽하게 정확히 집계하면 김건모가 가장 많이 음반판매한 기록이 아니라 서태지가 가지고 있을수 있다고 합니다.실제 서태지 음반중 가장 낮은 판매량을 보이는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의 공식기록이 120만장 인데요.
실제 서태지가 말했는데.. 기획사가 집계하기로
아무리 못해도 130만장 이상은 나갔다고 하네요.
근데 일부러 서태지가 낮추어서 말한거래요. 음반관계자들이 또 뭐라고 할까봐 짜증나서...
서태지와 아이들 2집 진짜 200만장 넘은거 100%확실하답니다. ㅎㅎ
[내용추가] chunlang12 (2003-12-16 16:11)
참.. 서태지는 뮤지션을 넘어 아티스트래요.
누나가 ㅎㅎ.. HOT는 아이돌 그룹이지만..-_-;;
내용출처: chunlangsung님 답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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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까지 읽으신 분!!!!
그대의 인내심에 박수를~!!! 짝짝짝짝~~~♬